사단법인 유티에스코리아

파리올림픽

- 허건식 수석부회장 중부매일 기고문

사단법인 유티에스코리아 | 기사입력 2024/07/30 [14:00]

파리올림픽

- 허건식 수석부회장 중부매일 기고문
사단법인 유티에스코리아 | 입력 : 2024/07/30 [14:00]

 

프랑스 파리는 1900년과 1924년에 이어 올해 올림픽 대회가 세 번째 개최되는 도시다. 파리는 올림픽 개최도시라는 지위를 넘어서 올림픽 역사를 담은 도시이기도 하다. 올림픽 창시자인 쿠베르탱이 프랑스 파리에서 올림픽을 창설했고, 1915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사무국이 스위스 로잔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파리에 있었다.

1894년 근대올림픽을 설계한 쿠베르탱을 비롯한 IOC 관계자들은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엑스포)에서 전세계인들에게 알리고 올림픽 개최를 위해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각 국가들이 올림픽에 대해 모르고 있어 명분을 내세울 이벤트가 필요했다. 그것이 고대 올림피아드를 개최했던 그리스 아테네에서 1896년 제1회 올림픽을 개최한 것이다.

쿠베르탱 IOC위원장하에 개최된 첫 올림픽은 1900년 파리올림픽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파리만국박람회의 주최 측과 갈등 등으로 쉽지만은 않았다. 올림픽 개·폐막식은 없었고 대회기간도 박람회기간중 5월에서 10월까지 오랜 기간을 두고 개최했다. 이 기간동안 올림픽이라는 말보다는 19개 종목의 국제대회로 알려져 있었다. 이 기간동안 경기대회에는 26개국 1,226명이 참여했다. 개최국인 프랑스가 출전선수의 72%를 차지했고 많은 메달을 획득했지만, 박람회에 참석한 나라들까지 올림픽을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는 지난 19세기를 기념하고 다가올 20세기를 위한 발전을 목표로 세기의 이벤트였다. 이 박람회에는 다양한 국가 간의 유사성은 물론 다양성의 이해를 통해 문화적 관용을 늘리자는데 있었다. 그리고 에디슨과 테슬라의 전기 기술을 비롯하여, 유럽의 무선통신과 전자파 이용 기술, 자동차 기술, 퀴리 부부가 발명한 방사선 기술 등이 소개됐다.

쇄국정책을 청산한 뒤 독립국가임을 선언하고 근대화로 접어든 대한제국도 파리 만국박람회에 참여했다. 박람회에서 대한제국은 자연환경과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로 소개했으며 평화롭고 안정적인 정부와 산업화를 위한 철도와 도로 건설과 확대 등의 개혁을 추진하는 나라라고 알렸다. 또한 대한제국관도 프랑스의 미므렐 백작과 건축가 페레가 경복궁 근정전을 참고해 목조건물로 지어 에펠탑 샹드마르스공원에 설치했다. 이 전시관에는 비단을 비롯해 놋그릇, 도자기, 나전칠기와 공예품, 의복 등을 비롯해 금속활자로 만든 '직지'를 세계인들에게 처음 공개했으며 조선의 투구, 검, 화살통, 군복 등도 전시됐다. 이 박람회에서 대한제국은 대상 1개와 금메달 2개를 비롯해 전체 21개를 수상했고, 대한제국관 책임자였던 민영찬은 박람회를 빛낸 공로로 프랑스 명예훈장을 받기도 했다.

박람회에 참가한 대한제국의 관계자들은 제2회 올림픽 경기를 보았을 것이다. 당시에 우리나라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올림픽 대회 관계자들이 박람회장을 돌며 각 국 박람회 참가자들중에서 출전선수를 확보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참가했다면 일제강점기 이전에 대한제국의 이름으로 메달 입상자가 나올 수도 있었다. 설령 대회에 출전하지 않고 참가만 했더라도 우리나라 올림픽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올림픽 개최와 올림픽 창립도시인 파리에는 올림픽 유산(legacy)이 많다. 그 중에서 1900년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그랑팔레(Grand Palais)는 수도 파리의 최대 규모이자 상징적 기념물 중 하나다. 파리의 중앙에 위치한 그랑팔레는 1900년에는 박람회 목적으로 사용됐지만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는 경기장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1924년 올림픽은 각국의 치열한 유치경쟁이 있을 정도로 성장했으며 올림픽대회의 체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1924년 올림픽이후 그랑팔레는 예술문화시설로 전환됐다. 그리고 다시 100년이 지난 이번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위해 개조했다. 이번 대회에 펜싱, 태권도, 장애인태권도, 휠체어 펜싱을 위한 경기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처럼 세 번의 올림픽을 개최하는 도시이고 유산이 있지만, 지금 파리는 국제사회에서 올림픽 도시로 불리지 않는다. 올림픽을 지켜내지 못했고 IOC본부 마저 스위스 로잔으로 이전한지 110년이나 지났기 때문이다.

이번 파리올림픽에 출전한 우리나라 선수단은 지난 40년 동안 최소 인원에 정부의 관심이 부족한 가운데 출전했지만 어느때보다도 선수단은 파이팅이 넘친다. 펜싱의 오상욱 선수가 그랑팔레 경기장에서 첫 금메달을 시작으로 메달 행진이 시작됐다. 1900년 만국박람회에 참여한 대한제국인들의 기운을 받아 선전하길 기원한다.


출처 : 중부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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